2024년 새해가 밝았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나 보라 새것에 되었도다라고 하신 말씀처럼 과거의 죄의 습관에서 벗어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새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한국교회 연합기관들이 새해를 앞두고 발표한 메시지를 보면 한결같이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정작 교회는 아직 어두운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가 바뀌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급감했던 주일예배 참석 수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등 시름이 깊어만 가고 있다.

사실 이런 한국교회의 고민은 배부른 투정일지 모른다. 정말 큰 걱정과 위기는 따로 있다는 말이다. 교회에 안 나오는 교인 때문에 고민이 아니라 아예 나올 교인이 없다면 이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금 대한민국은 인구 절벽으로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합계출산율이 0.7명에서 새해엔 0.6명으로 더 떨어질 거라고 한다. OECD 국가 중 최하위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꼴찌 수준이다. 앞으로 20년 후에는 수능을 볼 고3 학생이 없게 될 거라고 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주요 연합기관들이 신년메시지마다 이 문제를 중요한 어젠다로 제시한 건 이런 배경이 있다. 우리나라가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하게 된 건 한국교회의 책임이 없지 않다. 기독교는 생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성탄절과 부활절 같은 기독교 중요 절기는 생명과 연관이 돼 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했지만, 물질 만능에 지배당해 생명의 소중함을 잊은 게 불행의 시작이다.

70~80년대만 해도 정부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무턱대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구호 아래 산아제한 정책을 폈다. 교회는 입으론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가르치면서 이런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에 맞장구를 쳤다. 그 결과 교회학교는 문을 닫고, 노인들만 남은 교회가 되고 말았다.

뒤늦게 교단·연합기관 차원에서 저출산대책위원회를 상설화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으나 얼마나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지 의문이다. 대책이란 것이 젊은이들의 결혼과 임신, 출산 등으로 자연스럽게 선순환돼야 가능한 것인데 교회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막연하기 이를 데 없다.

정부는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은 나라로 바꾼다는 기조 아래 출산 가구 주거안정 지원’, ‘육아휴직 확대’, ‘영아기 육아가구 부담 큰 폭 경감’, ‘취약계층 아동 맞출 돌봄 강화등을 출산율을 높일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여기에 교회는 정부 시책의 경중을 가려 아기를 낳고 돌보는 문제를 어떻게 지원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에 앞서 생명을 소홀히 여긴 죄를 뼈저리게 회개하고 반성하는 일이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아기를 낳아도 돌봐줄 시설과 사람이 없으면 백약이 무효해진다. 교회를 비롯한 종교시설을 돌봄시설로 전환해야 할 이유다.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시설들이 사회에 많아지는 건 아이들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길이다. 한국교회가 더욱 열심히 이 일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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