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목사

 한 때 우리나라 강아지 이름의 상당수는 메리가 차지하였다. 메리(Mary)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서 비롯된 이름이다(마 1:18). 그리하여 마리아는 신성한 이름으로 간주되었으면서도 신앙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이름이 되었다. 가톨릭교회에서 마리아는 신앙의 본보기로서 성인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와 거의 동급으로 간주되는 숭모의 대상이다. 흔히 성모 마리아, Madonna, Our Lady, Notre Dame 등으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학문 영역에 ‘마리아학’(Mariology)이라는 분야가 있다. 글자 그대로 마리아에 관하여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며 ‘마리아 연구센터’는 독자적으로 그 연구에 집중하는 기관이다. 마리아의 일생과 죽음에 관한 신비로운 일화들이 넘쳐난다. 성서에는 동정녀로서 예수를 잉태한 사실에 머물지만 가톨릭교회는 그녀가 어떠한 흠결이나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여성으로 간주한다. 그리하여 그녀가 죽은 후에 육체와 영혼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믿음까지 생겨난 것이다.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마리아’가 구약의 출애굽기에 나오는 ‘미리암’과 동일한 이름이라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구약성서의 히브리어가 외국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현상이다. 즉 기원전 3세기 그리스어로 번역된 <70인역>은 마리암(Mariam)으로 음역하였으나 기원후 5세기 라틴어 성서는 마리아(Maria)로 옮겼다. 마지막 자음 탈락현상이다. ‘솔로몬’의 경우는 본래 슬로모(Shlomoh)에서 마지막 자음이 첨가된 예다. 라틴어 성서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미리암은 자연스레 마리아(Maria) 또는 메리(Mary)로 자리한 것이다. 복음서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마르다의 자매이며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등 동일한 이름이 여럿 등장한 것은 그만큼 미리암이라는 이름이 유대인 사회에서 친숙하다는 증거다.
미리암은 아므람과 요게벳의 딸이며 모세와 아론의 누이다. 사실 미리암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동사로 ‘아이를 간절히 원하다,’ 또는 ‘높이다’가 되고 분사형으로는 ‘사랑받는 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편 미리암이 ‘야웨를 사랑하다,’ 또는 ‘야웨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Ross, “Miriam,” IDB 3, 402> 아랍어 ‘마람’(Maram)이 히브리어와 유사하게 ‘아이를 원하는 사람’을 뜻한 것으로 보아 ‘미리암’은 라헬이나 한나처럼 임신을 간절히 원하는 모성적 본능을 일깨운 이름으로 볼 수 있다(창 30:22; 삼상 1:10). 사실 미리암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정보는 성서에 없다.

미리암이 처음 등장하는 출애굽기 2장에서는 익명으로 나온다. 모세가 성장하여 더 이상 숨길 수 없자 부모는 그를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 강에 버린다. 이 때 그녀는 단지 ‘모세의 누이’로 언급되었을 뿐이다(출 2:4,7-9). 그의 부모 역시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출애굽기 15장은 미리암의 직책과 가족 관계를 명백히 밝힌다. 미리암은 ‘여선지자’이며 ‘아론의 누이’다. 모세의 누이를 예상한 독자들은 잠시 멈칫한다. 형제간의 서열은 아마 미리암, 아론, 그리고 모세 순일 것이다. 따라서 모세의 누이보다 ‘아론의 누이’가 더 적절하다.

한편 ‘여선지자 미리암’은 다소 낯설다. 구약 전통에서 여성의 리더십이 이따금씩 언급되곤 한다. 예컨대 미리암은 드보라(삿 4:4), 훌다(왕하 22:14), 노아댜(느 6:14) 등과 함께 여선지자 대열의 위대한 인물이다. 탈무드는 여기에 한나, 아비가일, 에스더까지 묶어 유대교의 일곱 여선지자로 꼽는다. 미리암이 여선지자의 맨 앞에 당당히 서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야웨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던지셨도다.” 그녀가 소고 치며 부른 ‘미리암의 노래’는 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 중의 하나다.

미리암은 광야 유랑 중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일로 아론과 합세하여 모세를 비난한다(민 12:1). 이 일로 인해 그녀는 나병에 걸려 얼굴과 온 몸이 눈처럼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결국 진영 밖에 7일 동안 격리되었다가(민 12장) 돌아왔으나 광야 유랑생활 40년이 끝나던 정월 가네스 광야에서 죽어 그곳에 묻혔다(민 20:1).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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