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남과 북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우리는 그 영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별히 전시에 발생한 월북•납북 문제는 상흔처럼 남아 있다. 과거 우리 사회에는 ‘납북’이든 ‘월북’이든 ‘북’(北)이라는 글자만 들어가면 무조건 ‘빨갱이’로 치부해버리고 낙인찍는 분위기가 팽배하였다. 아직도 그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회적 담론으로 다루어질 만큼은 성숙해졌다.

이에 『기독교사상 6월호』에서는 동족상잔의 비극 70년을 맞아 ‘특집-6•25전쟁 시기의 월북•납북자들’이란 주제를 마련했다.

이번 특집에는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기광서 교수와 국민대학교 교양학부 여현철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진석 명예교수가 ∆전쟁 시기 남한 정치인들의 월북, 납북 ∆납북자 가족의 시련과 고통 ∆6•25전쟁 중에 납북•피살된 종교인들 등의 주제로 참여했다.

먼저 기광수 교수는 남한 정치인들의 납북과 월북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정치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북으로 가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어떠한 활동을 펼쳤는지 조명했다.

기 교수는 해방 후 공산 정권의 부족한 고등인력을 채우기 위해 북한은 남한의 명망가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개전 직후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할 당시에 남아 있던 국회의원과 사회의 저명 인사들은 정치적 포로가 되어 북한의 정책과 전쟁에 협력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억류된 인사들은 대미 비난 선전에 동원되었고, 북한을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후퇴의 위기를 맞은 인민군은 이들 정치인들을 월북시켰다. 50명에 이르는 국회의원들은 북에서 일정한 활동 영역을 제공받았으며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를 구성하였으나, 이후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면서 사실상 활동을 종료하였다고 설명했다.

기 교수는 “전쟁의 비극 속에 희생된 많은 정치인의 삶의 여정은 아직도 해소되지 못한 분단 상황에서 여전히 장막에 가려져 있다”며, “월북•납북 인사 개개인의 구체적인 월북 동기, 그리고 북한에서의 삶과 활동은 앞으로도 꾸준한 연구가 필요한 작업”이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기 교수는 “이들의 행적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평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면서, “이를 위해 언젠가 북한의 기록문서고가 개방될 날을 기대해본다”고 소망했다.

이어 여현철 교수는 납북자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면서 특히 그 가족들이 어떠한 고통을 받아왔는지를 소개했다.

여 교수는 전시 납북자는 전시 납북자 및 가족들에 관한 피해 보상 및 명예 회복 등에 대한 논의는 사회적 담론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이산가족 담론의 하위 분야로 취급되는 형국이다. 전시 납북으로 인해 남한 사회에서 납북자 가족으로 낙인찍혀 살아가게 된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가족의 피랍과 이산이라는 아픔을 겪었다. 게다가 남한에서는 연좌제와 사회적 차별이라는 이차적인 피해를 수십 년 동안 받아왔다. 70년간 이어진 이들의 억울한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곳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라고 밝혔다.

이에 여 교수는 “70여 년간 이어진 남과 북의 단절과 이념 대결, 그리고 남남 갈등으로 인해 파생된 납북 피해자, 납북 가족들은 오랫동안 그 피해 사실을 숨긴 채 살아왔다”며, “그들의 ‘침묵’에 동조할 수밖에 없게 만든 정부, 그리고 사회적인 차별에 동조한 우리 자신들에 대해 통렬한 반성을 촉구한다. 그리고 실직적인 보상에 대한 논의가 이제부터라도 시작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덧붙여 여 교수는 “남북자들은 점점 잊혀져 가고 있지만 그들의 이름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아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삶은 우리 곁에 없지만, 그들이 남긴 가족들은 지금 우리 곁에 있으며 앞으로도 함께 있을 것”이라며,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하고 또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더욱 어루만져야 하는 것이 우리 한반도 구성원들의 숙명이다. 차별이 아닌 통합을 더욱 중요한 화두로 내세워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정진석 명예교수는 납북, 피살된 기독교 종교인(목사, 신부 등)에 관하여 집중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정 명예교수는 “정부와 대한적십시자에서 발간한 여러 종의 납북자 조사 명부에서 직업란에 ‘목사’, ‘신부’, ‘장로’, ‘집사’ 등으로 표시된 기독교인들을 추려내고, 여기에 교회사 관련 자료들을 추가, 종합하여 피살되거나 납북된 종교인의 숫자를 교파별로, 직분별로 파악하여 표로 정리했다.

또한 각 연구 주체마다 납북된 종교인들의 숫자가 다른 것은 납북자 명단에 직업이 구체적으로 기재되지 않았거나, 정부 자료에 수록되지 않은 사람을 포함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피살되거나 납북된 주요 종교인들의 이름과 언제 어떻게 피살, 납북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정리했다.

정 명예교수는 “전쟁을 전후해 기독교인들이 혹독한 수난을 겪었다는 기록은 여러 종류가 있다”며, “피살과 납북된 기독교인들의 구체적인 자료가 많은데도 종교계는 기독교인의 희생에 소극적인 자세로 외면하거나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 명예교수는 “7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납북된 종교인들 가운데 생존해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며, “하지만 잊지는 말아야 한다. 북한에서 어떤 처지에 놓여 있었는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는 알아야 한다. 그 임무는 살아 있는 종교인들이 짊어져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