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산상보훈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매번 이 말씀은 나를 내동댕이치는 듯 한 충격을 주고, 자신감을 여지없이 꺾어 놓곤 한다. 범접할 수 없고, 격을 가름할 수 없는 높은 말씀 앞에 나를 세우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시니 갈릴리, 데가볼리, 예루살렘과 유다 지방, 심지어 요단강을 건너 동편 이방 사람들의 지역에서까지 사람들이 몰려 왔다.(마4:25)

그들은 잘 살고, 신분과 지체가 높은 사람들도 없지 않았겠지만 대부분 가난하고, 병들고, 귀신들린 사람들로 세상으로부터 버림당하여 외롭고, 무기력한 죄인들이었다.(마4:24) 세상적 가치관으로 보면 인생을 실패자들이고, 소망이 없어 보이는 자들이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올라가 앉으셔서 이 무리들을 가르치셨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의 그 큰 가르치심이 권세가 있어 듣는 사람들 모두가 놀랐다.(마7:28) 예수님은 비록 초라한 옷을 입고 계시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만유의 주(主)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가르치고 계신다.

마음에 교만이 고개를 들지 않아야 주의 음성이 들린다.

산상보훈은 이상론이라거나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사람이 이 세상엔 없다는 생각이 마음에 일어나면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하게 된다. 그 마음을 빨리 꺾고 말씀 앞에 서야 한다.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에 드린 고백이다. 막연히 생각하거나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먹듯이 마음 속 깊이 담았다는 고백이다. '그 말씀이 내 기쁨이 되었나이다.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나이다.'(렘 15:16)

산상보훈으로 증거 하시는 팔복은 예수님 자신의 성품이요, 동시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성품을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선천적으로 가진 본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심령이 가난한 것'은 본성과 관계가 없다. 물론 사람들 중에는 천성적으로 겸손한 사람도 있고, 눈물 많은 사람도 있고, 성격이 부드러운 사람도 있고, 의분이 강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생물학적인 특징을 여기서 논하지 않으신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 성품을 갖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주님은 '나를 따르는 자는 내 성품들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계시다.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새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난 사람만이 닮아갈 수 있는 주님의 성품이요, 또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갈수 있는 주님의 성품이다. 이 여덟 가지를 각각 떼어 생각할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특별히 마음이 온유하다거나 또 다른 사람은 심령이 가난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 한 가지씩 소유하는 성격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수훈의 말씀은 예수님 닮기를 원하는 한 사람의 온전한 성품이다. 예수님의 성품이 내 것이 되었을 때 내게서 나타나는 새로운 성품이요, 거룩한 성품을 말함이다.

팔복이 예수님의 성품이기 때문에 팔복을 예수님의 초상화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팔복을 음미하면 마치 예수님을 보는 것 같다. 팔복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모습에는 심령의 가난함이 있다. 애통함이 있다. 온유함이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다. 화평이 있고,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흔적들이 남아 있다.

주님이 이 말씀을 권위 있게 하시는 의도는 '내가 이러하니, 너희도 이러해야 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구원은 작은 예수가 되는 것이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는 말은 예수님을 따라 가는 자, 예수님을 닮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제자이다. 팔복은 예수님의 성품이므로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고, 닮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늘 묵상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하면 그 사람과 가까워지고, 그 사람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면 유지할수록 그를 닮게 된다. 오래 함께한 부부처럼, 하지만 예수님을 닮는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손 씻듯이 다 씻어 버리고, 세상을 살면 결코 주님을 닮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삶에서 우려내면 그 말씀이 씨앗이 되어 나로 하여금 주님을 닮아 가도록 인도해 줄 것이다. 목표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님을 닮은 사람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할 일이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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