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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분열 시대 넘어, 한반도 평화의 시대 열자

기사승인 2020.01.08  16: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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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궁한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2020년도 새해 맞아 가던 길 멈추고 돌아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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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시대 넘어 평화의 시대 열자

새해에는 한국교회에 분열과 갈등의 시대를 넘어 평화의 시대를 열자고 제안한다. 오늘 대한민국은 진영싸움으로 인해 분열과 갈등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그 중심에 교회가 있다. 사실 한국교회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자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노사 간의 갈등, 계층 간에 갈등, 세대 간의 갈등, 보혁 간의 갈등, 이념갈등, 부자와 가난한자 간의 갈등 등을 부추기며, 항상 가진 자, 기득권자들을 대변해 왔다.

특히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제도와 이념에 갇혀 북한을 무조건 적대시하며,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여 왔고, 보이고 있다. 히틀러가 유대인 500만명을 죽이는데 혼자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유럽의 기독교인들의 ‘유대인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라는 관심이 유대인 500만명을 학살했다. 오늘 한국교회 대부분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북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공산주의는 무조건 싫다는 관념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의 내 노라는 교회는 담임목사직을 세습한다. 이는 중소형교회로 번져 나가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한국교회가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 혼자만 하나님나라에 가겠다는 것이다. 남한만 하나님나라에 가겠다는 속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나라는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나라는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가야 한다. 남북한민족과 세계민족이 함께 가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자기중심에 갇혀, 기득권에 갇혀 혼자만 가겠다고 아우성친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보수적인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은 남북한 간의 싸움을 부채질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으니, 남한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샬롬(평화)를 외치기보다도, 힘에 의한 로마 팍스를 외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가치와 복음에서 이탈한 것이다.

대부분의 보수적인 목회자와 교인들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에 갇혀 경제보복을 단행한 일본을 향해서는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같은 민족인 북한에 대해서는 무조건 적으로 간주한다. 오히려 경제보복을 단행한 일본 아베를 향해 ‘사죄 한다’고 반민족적인 모습을 보인다. 한마디로 일제 36년의 치욕을 잃어버린 처사이다. 일본 아베는 우리 위안부 할머니와 강제 징용자들에 대해서 사과한번 없었다.

국민 대다수가 정부만을 믿고 일본 아베의 경제침략에 맞서 차분히 대처하고 있는데, 일부 기독교인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향해 돈을 벌기 위해서 매춘부를 자원했다고 막말을 쏟아 내는가 하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며, 일본과의 지소미아 연장을 촉구한다. 일본은 대한민국과 동맹을 맺을 수 없는 침략 국가이다. 2차 대전의 패전국인 일본은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원시국가의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을 것이다.

오늘 남북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반대하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고서는 일본 아베를 향해 사죄니, 동맹이라는 말을 입에 오르내릴 수 없다. 이것은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친일적인 정치인과 목회자, 교인, 기자, 학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 할 수 없다. 이들은 나라를 지켜야 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저버린 것이다.

“변화와 회개의 기도만이 민족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교회 누려온 기득권 내려놓고, 나라와 민족의 미래준비하자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갈망하자

오늘 대한민국의 기득권자로 자리 잡은 일부 목회자와 교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돌아와야 할 사람을 잊은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는 구약성서 이사야 62장 1-7절에 잘 나타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왔다. 헌데 이스라엘 민족은 돌아와야 할 같은 민족을 잊고 있었다. 오히려 돌아오는 것을 귀찮게 여겼다. 기득권자로 등극한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 그리스도인 중 일부는 한국교회와 사회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 기도하자며, 나라와 민족, 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구국기도를 드린다. 하나님은 항상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행동하셨다. 이스라엘 민족이 파라오의 밑에서 고난당하는 히브리인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애급의 바로 밑에서 해방시켜 주셨다. 이스라엘 민족은 1천년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을 받으면서, 야훼 하나님을 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하나님나라를 갈망했던 것이다.

그렇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하나님나라를 갈망해야 한다. 이런 나라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약속을 잊지 않게 하기위해서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 되는 것을 귀찮게 여겼던 사람들이 깨닫게 기도하라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시키고, 통일 이후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인들은 일본의 경제침략, 미국의 천문학적인 군사비 요구, 중국과 러시아의 대한민국 영공침공, 정쟁만을 일삼는 정치인 등으로 인해 곤궁해진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이 기도는 분명 우리민족의 희망으로 다가 올 것이다. 하나님은 의욕을 잃고, 비전 없이 살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를 대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오늘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을 보면, 꼬여도 한참 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민들은 안간힘을 쏟고 있다. 사람들은 애사에 있어 쉽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렇다보니 쉽게 잃어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새해 송구영신예배서 많은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고, 약속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 기도하는 민족은 미래 하나님나라에 대한 꿈이 있다. 하나님은 꿈을 가지라고 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새해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한 꿈을 빌어보자. 우리민족은 일제 36년 이전부터 우리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우리의 땅에서 논의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외세에 의해 결정되었고, 결정되고 있다. 한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민족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북한의 문제는 정부의 점유물이었다. 국민들은 통일문제에 대해서 간여할 수가 없었다. 평화통일을 이야기 했다가, 남북한 민족의 화해를 말했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했는가. 과거 보수정권들은 남북한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이용해 왔다는 사실 앞에,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무엇이라고 변명 할 것인가.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이런 정권에 대해서 가정 협력자였다는 사실.

평화통일과 한민족의 화해를 외치는 목회자와 교인들을 향해 ‘빨갱이’, ‘좌파’, ‘용공’으로 매도하며, 이들을 교회에서 추방하지 않았는가. 그러면서 일부 보수적인 목회자들은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혜택을 누리고, 피 묻은 손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는가. 분명한 것은 일부 한국교회는 과거에도, 지금도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반통일적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참담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예수님의 삶의 현장이며, 역사의 현장인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봉사해야 한다. 교회는 지금까지 누려온 기득권을 내려놓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자.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자.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 힘을 보태주자.

우리 스스로 우리의 문제 해결하자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국민들과 교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비전을 찾자. 그리고 기도하자. 기도를 잊고, 나라의 비전을 저버리면, 민족은 설자리가 없다. 사도 바울은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두려워하라. 겸손하라고 했다. 우리가 겸손하지 않고, 자기를 나태나면, 그 사회는 갈등만을 키운다. 사회는 분열된다. 사도 바울의 이 말은 오늘 십자가 철탑을 높이는데 경쟁을 벌이는 한국교회에 많은 교훈을 준다.

한국교회의 면면을 살펴보면, 내 말만 하고, 고집을 부린 결과, 곳곳에서 다툼이 일고, 분열의 씨앗이 되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400여 교단으로 갈라져 있다. 영미의 교파주의 영향 때문에 분열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아집과 고집으로 인해 분열되었다. 오늘 한국교회의 분열된 상태서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논 할 수 없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은총의 선물이다. 이 은총의 선물을 남북한민족과 세계민족이 함께 누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깨어 기도하며, 변화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세계와 미래로 나가야 한다. 새해를 맞은 한국교회는 하나의 한국교회, 하나의 한민족을 갈망해 보자. 그리고 미국을 향해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 협조하라고 외쳐보자.

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는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실현될 수 없다. 세상의 변화도, 교회의 변화도, 개혁 없이는 기대 할 수 없다. 개혁 없이는 복음이 열리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야(회개) 한다. 세례요한은 예루살렘의 기득권자를 향해서 회개하라고 했다. 예수님도 바리세파와 율법주의자들을 향해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했다.

그러나 세례요한도, 예수님도, 이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지 않고, 돌아서지 않고서는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없다. 높은 담을 허물지 않고서는 새로운 세상에 들어갈 수 없다. 벽도 밀면 문이 된다. 대한민국의 기득권자들은 경제부국이 된 이 나라에서 마냥 행복하다. 이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 했지만,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제라도 벽을 밀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자.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기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는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자. 예수님의 삶의 현장은 산업재해로 1200명이 죽어나가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있는 곳, 한국에 들어와 차별과 냉대를 받는 외국인 노동자, 일본제국주의자들로부터 시궁창만큼도 못한 생활을 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는 곳, 보다 낳은 삶을 찾아 바다 한가운데서 방황하는 난민들이 있는 곳이 아닌가. 한민족의 소원이며, 염원인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분단의 현장이 아닌가. 2020년도에는 이런 곳에서 평화를 노래하며,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야 되지 않을까.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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