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히브리어는 22개의 자음으로 구성된 알파벳 체계이다. 상형문자에 비해 훨씬 적은 글자를 활용하여 의미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히브리어는 기본적으로 모음 없이 보통 자음만으로 통용되기 때문에 해석학적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이를 테면 최초의 기록자에게 본문의 의미는 명확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후대의 독자가 모음 없는 본문을 최초의 기록자가 의도한 대로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란 어렵다. 오직 자음으로 이뤄진 본문의 다양한 해석은 처음부터 열려 있었다. 자음 본문의 모음을 확정하는 작업이 마소라 학파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갈대 바다’의 ‘수프’(ףוס) 역시 모음이 없는 상태에서 몇 가지 가능한 독법이 제시된다. 곧 ‘수프,’ ‘소프,’ ‘사파,’ 또는 ‘사프’로 읽을 수 있다. 이렇듯 다른 독법은 자연히 여러 가지 해석학적인 논점을 내포한다. 첫째로 갈대를 의미하는 ‘수프’는 지금까지 독점적인 지위를 누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마소라 학파가 현재의 모음으로 확정한 것도 여기에 공헌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갈대 바다’로 읽는다면 <70인역>의 ‘홍해’를 어떻게 설명할지 난관에 부딪힌다. 출애굽의 기적을 언급할 때면 흔히 ‘홍해’를 건넌 사실을 떠올리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지 ‘갈대 바다’를 연상하지 않는다.

둘째로 ‘끝’이라는 뜻의 ‘소프’는 신학적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암시를 제시한다. 먼저 소프가 동사로는 “마치다, 소진하다, 완수하다”(시 73:19, 암 3:15, 에 9:28, 사 66:17, 렘 8:13, 습 1:2,3, 단 4:30; 2:44) 등으로 쓰이고, 명사로는 “끝, 종료, 결론”(대하 20:16, 전 3:11, 7:2, 욜 2:20)을 의미한다. 특히 <다니엘>의 아람어로는 “땅 끝”(단 4:8,19, 6:27, 7:26,28)으로 쓰인 예가 있다. 한편 중세 유대교의 하나님 표기 중에 ‘끝이 없는 분’이란 뜻의 ‘엔 소프’(ףוס ̄ןיא)가 있다. 곧 하나님은 무한광대하며 어디에나 계신 분이라고 여긴 표현법이다. 여기의 소프는 ‘마지막, 또는 끝’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얌 소프는 ‘바다의 끝’이나 ‘최후의 바다’를 뜻한다. 이 때 ‘바다’는 일반적 물질 명사라기보다는 신화적인 관점에서 원초적인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Batto, "Red Sea or Reed Sea?" 62-63.>

셋째로 강력한 폭풍을 뜻하는 ‘수파’로도 읽을 수 있다. 동사 ‘사파’(הפס)는 “파괴하다, 소멸시키다”를 뜻하고(렘 12:4, 시 40:14), 명사 ‘수파’는 목숨과 재산을 단숨에 날려 보내는 태풍 또는 회오리바람이다(욥 21:18, 시 83:16). 따라서 ‘사파’는 “파멸, 멸망”이란 뜻으로 사람과 배를 순식간에 삼킬 수 있는 바다의 거칠고 강력한 바람과 제어할 수 없는 힘을 상징한다. 흔히 바다가 일으킬 수 있는 거대한 폭풍과 파국의 은유적 표현이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제국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동시에 혼돈의 세력 이집트의 파멸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프’(ףס)라고 읽는 것도 가능하다. 히브리어 동사의 중간 자음 ‘바브’(ו)가 생략되는 경우가 간혹 발견된다. 사프가 주로 “기준, 경계, 문지방” 등으로 쓰인 예가 발견된다(삿 19:27, 암 9:1, 사 6:4, 왕하 12:10). 현재 수프를 ‘사프’(ףס)로 독음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지만 출애굽과 연관해서 ‘사프’의 의미를 고려할만하다. 왜냐하면 ‘사프’로 읽는다면 ‘바다의 문지방’으로서 출애굽의 신학적 의미에 대한 해석학적 다양성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얌 사프’를 건넘으로써 이스라엘은 이전과 다른 세계에 진입(eisodus)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모음이 없는 상태의 ‘수프’(ףוס)에서 네 가지 다른 방식의 독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제 ‘바다’를 뜻하는 ‘얌’과 관련짓는다면 처음 ‘갈대 바다’는 히브리어 읽기의 개방성(open reading)을 제한한다는 약점을 노출하게 된다. 그러나 각각 ‘끝, 파멸, 경계’로 해석할 수 있다면 출애굽의 의미를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신학적 의미를 강화하는 독법이랄 수 있다.

마소라 본문의 ‘얌 수프’는 이스라엘이 탈출하던 경로를 제시하지만 본래 자음 본문의 독법은 두렵고 무서운 바다의 ‘끝’(ףוס)이기도 하며, 이집트라는 거대한 제국의 ‘파멸’(הפס)을 뜻하기도 하고, 이스라엘이 노예의 신분을 넘어 자유인이 되는 ‘경계선’(ףס)을 가리키기도 한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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