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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궁한 백성에게 새로운 나라의 소망을 심어주자

기사승인 2019.10.22  10: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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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머물러 있는 한국적 상황의 선교정책과 전도전략 변화돼야

예수님의 삶의 현장이 선교의 장이 돼야

오늘 한국교회는 전도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 여기에다 많은 교회들이 교인들을 한국교회가 이단사이비로 규정한 교회와 단체에 빼앗기고 있다. 교회마다 교인들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고 아우성친다. 또한 교인들이 줄어들면서, 문을 닫는 교회들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70-80년대 하룻밤을 자고 나면 교회와 다방이 생긴다는 말이 나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왜 한국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이 멈춘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 한국적 상황에 맞는 선교전략을 세워야 한다. 분명한 것은 오늘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생활현장서 이탈했다. 70-80년대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삶의 현장인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있는 곳 노동자, 빈민촌에서, 이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이들과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한마디로 당시 한국교회는 이들에게 소망을 주었다. 교회마다 크게 성장했고, 매일매일 교회가 세워졌다. 이는 초교초기에도 그러했다. 선교초기 한국교회는 새로운 나라를 갈망하는 이 땅의 민중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운동을 벌였다. 선교초기 망해가는 이씨 조선 말 눌린 자, 피압박 여성과 농민, 백정, 천민, 떠돌이들을 향해 복음을 선포하면서, 한국교회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교회는 일본 식민지세력이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로 크게 성장했고, 교인들의 마음속에서는 선교사들의 선교정책과는 무관하게 민족의식이 싹 텄다. 또 3.1만세운동 당시 고난당하는 민족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갈망하면서 성장했다. 당시 한국교회의 교인들에게는 작게나마 민족의식이 싹텄으며, 그것은 3.1만세운동으로 나타났다. 한국교회는 어느 교회 할 것 없이, 대부분의 교회가 3.1만세운동, 비폭력 평화운동에 참여했다.

그리고 교인들은 고난당하는 민족을 위해 기도했다. 이 기도소리는 해방 후, 6.25 한국전쟁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해방이후 전쟁으로 인해 먹을 것을 걱정하며 살았던 가난한 백성, 70-80년대 고향을 떠나 무조건 상경해 청계천, 가리봉 등에서 밤잠을 자지 않고 일했던 노동자들과 함께 했을 때, 교회는 크게 성장했다. 당시 한국교회는 구원받은 자로서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 안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다. 구원자, 해방자에게 나라와 민족을 위한 간구의 기도소리가 없다. 기도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기도는 한마디로 허공을 치는 기도이다. 분열을 획책하며, 진영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화해자의 역할을 상실했다. 그만큼 교회가 성장하면서, 기득권자로 변질돼, 국민들에게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교회는 가진 자들의 종교로 변질되었다. 일제 말 신사참배를 결의하면서, 하나님과 민족을 배신했던 당시 한국교회를 보는 듯하다. 아무튼 하나님나라선교는 예수님의 ‘삶의 현장’이며, ‘역사의 현장’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 할 수 있었던 것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예수님의 생활현장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인 결과이다. 이것은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육이며, 교훈이다.

초대교회의 선교로 돌아가라

이제 한국교회의 선교와 전도전략은, 우리의 선교현장이 변한 만큼, 바뀌어져야 한다. 처음 선교의 열정은 오늘날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그 만큼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시켰다. 십자가 탑을 높이는데 경쟁을 벌여 왔고, 벌이고 있다. 한국교회의 선교와 전도전략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꾸어져야 한다. 한마디로 한국교회의 선교정책은 새로운 나라를 갈망하는 한민족에게 희망의 복음이어야 한다.

문제는 희망을 잃어버린 눌린 자, 노동자와 농민, 빈민, 떠돌이들이 더 이상 교회를 찾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것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선교정책과 전도전략이 이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한국교회가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예수님의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그리스도인이 없다는데 안타깝다.

초대교회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가 가진 것을 나누며, 생활하는 생활공동체였다. 여기에 기독교의 가치가 있다. 한국교회도 초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선교정책을 펼쳐, 기독교가 ‘가난한 사람들의 종교’라는 것을 입증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역시 일용할 양식을 문제로 삼고 있다. 분명 주기도문은 부자들의 기도문이 아니다. 한마디로 초기 한국교회의 선교정책은 가난한 사람, 고난당하는 민족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부자가 된 나머지 예수님의 시간과 공간에서 이탈해, 하나님의 자리를 맘몬으로 대치시켰다. 복음의 본질도 왜곡시켰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떠돌이, 노동자, 농민 등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눈물을 외면하고,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복을 빌어주기에 바쁘다. 예수님은 “부자청년에게 가진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 한국적 상황, 세계적 상황에 알맞은 선교정책을 세워 하나님나라선교를 실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렘넌트대회.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의 종교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 나가는 것보다도 어렵다고 했다. 강남의 일부 부자교회는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해 줄 것이 무엇이 그리도 많은지 위로해 주기 바쁘다. 그리고 이들이 드린 헌금에 복을 빌어준다. 가난한 사람들의 기도는 외면한다. 성장이 멈춘 한국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상황에 따른 선교정책을 세워 실행에 옮겼어야 했다.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교회는 소망이 없다. 오늘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시간과 장소에서 이탈한 것은 분명하다. 이제 한국교회는 한국적 상황에 맞는 선교정책과 전도전략을 세워야 한다. 예수님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으로 돌아가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여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곳은 분명하다. 분단의 현장이며, 고난당하는 사람들이 있는 산업현장, 빈민촌, 소외된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대한민국의 하나님인 동시에 북한동포의 하나님이다. 또한 세계민족의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구원의 대상, 전도의 대상 역시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북한동포, 세계민족이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와 북한선교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가 세계평화를 담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남한민족을 위한 복음이고, 북한민족을 위한 복음이며, 세계민족을 위한 복음이다. 하나님나라는 혼자 갈 수 없다.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가야 한다. 남북한 민족 아니, 세계민족이 함께 가야 하는 곳이다. 이럼에도 오늘 한국교회는 하나님나라에 혼자 가겠다고 아우성친다. 한마디로 북한동포를 비롯한 세계민족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구원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예수님의 삶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자

한국교회의 선교현장은 분명해진다. 예수님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이 선교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에 부여된 하나님의 선교명령이다. 그럼에도 오늘 한국교회의 전교정책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세상은 변하고, 교인들의 수준은 높아져 가는데 오늘 한국교회의 선교정책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오늘 한국교회 성장이 멈춘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어느 교단의 보수적인 목회자는 “한국교회의 선교정책과 전도전략이 잘못된 점은 70-80년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고난당하는 이웃들과 함께하지를 못하고, 민주화운동에 교회가 참여하지를 못했다. 그것은 교회가 국민들의 의식을 따라잡지를 못한 것과 다르지 않다. 국민을 떠난 전도와 선교정책은, 국민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오늘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다”고 지적했다.

한국교회는 성장이 멈추면서, 90년대 미국의 전도전략이 한국교회에 소개되기 시작했고, 목회자들은 목회현장에 그대로 적용했다.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의 선교정책과 전도전략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변화시키지를 못했다. 하나님나라선교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지를 못했다는 뜻으로 받아드려진다. 미국교회의 선교정책과 전도전략은 한마디로 성장이 멈춘 한국교회가 다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를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한민족의 문화와 정서, 글로벌시대에 알맞은 선교정책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영미 선교사들이 가져다가 준 선교정책과 전도전략은 시대가 흐르면서,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서에서 이탈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고난당하는 민족, 곤궁해진 민족을 외면한 선교정책을 여기에서 멈추고, 한국적 상황에서의 새로운 선교정책을 세워야 한다.

또한 하나님나라운동의 선교정책은 다양성 속에서 하나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국교회 안에서 높게 일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의 교파주의와 분열된 상태로는 공동목표인 하나님나라선교를 감당할 수 없다. 이웃교회와 이웃교단의 신앙과 신학사상을 존중해야 한국교회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한국교회가 다락방전도협회의 선교정책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동 협회는 한국적 상황, 세계적 상황에 알맞은 선교정책을 세워 하나님나라선교를 실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마디로 237나라의 민족에게 빛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고,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다짐하는 계기를 가져다가 주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의 전도훈련과 선교정책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한국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예수님의 역사의 현장서 전도운동과 선교정책에 대한 새 틀을 짜야 한다. 과거의 선교정책과 선교전략은 구시대의 것이 되었다는 사실.

세계는 급변하는데 한국교회의 선교정책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교회는 희망이 없다. 찾아 온 성장의 기회마저 잃어버린다. 그리고 한민족 복음화의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예수님의 ‘삶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곤궁한 가운데 있는 민족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여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소망을 심어주자.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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