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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만큼, 그의 나라 위해서 일 하겠다”

기사승인 2019.10.17  1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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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주사랑교회 고광순 장로와 박순희 권사 부부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신앙의 이야기

   
▲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만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다짐하는 방주사랑교회 고광순 장로와 박순희 권사 부부.

그의 나라를 위해 일 하겠다

“우리 부부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다. 그런 만큼 생활현장서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을 해도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만큼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그 시간만 되면 교회에 들려 3시간 이상을 온전히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을 드린다.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오후 8시 30분부터 한 시간은 뜨거운 찬양을 올려 드리고, 2시간은 무릎 꿇고 열성적으로 기도를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이 시간만큼은 즐겁고, 행복하다. 우리 부부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이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도의 처음은 출석하고 있는 방주사랑교회 담임인 김신자 목사의 강권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일상이 되었다”

방주사랑교회 고광순 장로와 박순희 권사 부부의 신앙생활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고 장로 부부의 ‘삶의 현장’인 울산광역시 남구 신정1동 신정시장 팔복떡집은 시장 안에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화합과 나눔, 사랑의 상징이 되었다. 새벽 4시부터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고 장로 부부는 기도로 하루를 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부부의 기도는 쉼이 없었다. 말 그대로 고 장로 부부의 삶은 기도와 찬양, 기쁨과 나눔, 그리고 사랑이 있다.

고 장로 부부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 도와주신다”는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살려고 불철주야 노력해 왔다. 그래서 고 장로 부부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이 강같이 흘러 넘쳐난다. 아무리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겠다’는 신앙으로 견뎌냈다. 무엇보다도 고 장로의 부인인 박순희 권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의 아우성소리를 들으시고 역사하셨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깨닫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 딸을 버리시겠습니까”라며, 하늘을 향해 부르짖었다.

   
▲ 하나님의 역사로 마련한 팔복떡집.

고 장로의 믿음 생활이 순탄한 길로만 왔던 것은 아니다. 고 장로는 한 때 곁길로 빠지는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럴 때마다 박 권사는 남편을 향해 “이혼을 하자”고 협박을 했다. 그리고 남편을 위해서 기도했다. 박 권사의 눈물 젖은 기도로 남편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섰다. 그리고 생활현장에 뛰어 들었다. 고 장로는 ‘생명의 만나’인 떡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믿음으로 떡집을 운영하니 안 될 리가 없었다. 은혜롭게 많은 돈도 벌었다. 하지만 이웃들이 찾아와 금방 쓰고 갚겠다며 돈 좀 빌려달라고 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빌려주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해서 떼인 돈만 수억원에 이른다. 고 장로는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이 만들어 준 차용증이 잘못되어 법정에서 1년 형을 받고, 교도소에서 복역을 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장애를 가진 아들도 가졌다. 아들을 고쳐보겠다고 칠곡, 부산 등 돌아다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동안 모아 놓은 돈도 금새 사라졌다. 하지만 하나님은 고 장로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던 교도소에서 고 장로는 신구약성경전서 전체를 필서하기에 이르렀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김신자 목사를 만났다. 이 때부터 고 장로의 신앙생활에 큰 변화가 일었다.

   
▲ 하나님의 기도로 생명의 떡을 만드는 고광순 장로.

장애인 아들은 가정의 끈

김신자 목사를 만나기 전 고 장로의 믿음은 크지 않았다. 어머니를 따라 초등학교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세상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에는 영어선생님의 인도로 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교회에 나갔다. 교회에 가지 않으면, 선생님이 아무리 시험을 잘 보았어도, 0점을 주었기 때문이다. 고 장로는 이후 원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해양대학교에 들어가려고 시험도 쳤다. 1차 필기시험과 2차 면접은 무사히 통과했지만, 신원조회가 문제가 생겨 진학은 무산됐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고 장로는 한양대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결국 고 장로는 한양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한양대학교 입학 후 고 장로는 가슴 속에 한양대학교의 교훈인 ‘사랑실천’의 씨앗을 심었다.

고 장로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지만, 신혼생활은 탄탄치 않았다. “박 권사의 신앙이 없었다면, 가정이 깨지고 말았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과거의 자신을 거침없이 털어놓은 고 장로에 따르면, 소주와 맥주를 무한정 먹을 정도로 술고래였다. 친구도 많아 술 접대는 혼자 다하고 다녔다. 아내가 이를 곱게 볼 리가 없었다. 하루는 친구와 술을 먹고 새벽 4시가 되어서야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내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박 권사는 “당장 집을 나가”라고 소리 질렀다. 그 뒤로 그 친구는 20년 동안 한 번도 찾아오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박 권사는 남편이 세상 마실 것과 즐길 것에 빠져 있는 것을 그대로 두지 못했던 것이다.

고 장로 부부의 시련은 아들이 어린이병원에서 뇌병변 판정을 받은 순간이다. 하늘이 두 쪽이 난 듯했다. 쪽방에 살면서, 몸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한 결과가 장애인 아들이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박 권사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 “왜 당신의 딸을 버리시냐”고 매달려 기도를 드렸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절규이며, 아우성이었다. 박 권사의 기도는 곧 하늘에 닿았다. 오늘 이 아들을 통해서 고 장로의 가정은 화목해졌고, 부부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되는 원동력이 됐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이자 축복이었다.

박 권사는 “남편 고 장로가 과거 매일 술을 먹었는데도, 오장육부가 깨끗한 것을 보면 너무나 감사하다. 울산에 빈 몸으로 내려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옛날을 생각했다. 옛날을 생각하면 못 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참고 또 참았다. 고 장로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했다. 고난 속에서 김신자 목사님을 만났다. 지금은 은혜와 사랑이 차고 넘친다. 하루가 기쁘고 즐겁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매일매일 체험 한다”고 감사, 영광을 표했다.

고 장로 부부는 사업장과 장애인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처음 100일 작정기도에 들어갔다. 이 작정기도는 120일로 늘어났다. 또 180일로 늘어났다. 이제는 기도가 생활이 됐다. 하루 2시간이상 기도를 해야만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고 장로 부부는 아우성치는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역사하심을 개달았다.

   
▲ 하나님의 딸로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아름다고 즐거운 가정을 이루는데 중심에 선 박순희 권사.

나는 하나님의 딸이다

하나님은 고 장로 부부의 아우성소리(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셨다. 울산 신정시장에 처음 떡집을 오픈하고, 가게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 좌판에서 시작한 떡집은 사글세, 전세를 전전긍긍했다. 고 장로 부부가 떡집을 운영하면서, 가게 때문에 받은 상처는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상처를 받으면서, 얻은 결론이 무조건 내 가게를 갖는 것이었다.

단돈 1억원을 손에 쥐고, 내 이름으로 된 가게를 갖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주실 것으로 믿고, ‘내 가게를 갖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하나님은 고 장로 부부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한마디로 내 가게를 갖기까지의 과정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이었다. 그러기에 고 장로 부부는 교회와 신앙생활을 게을리 할 수 없다. 모든 일은 담임인 김신자 목사와 함께 상의하고 기도하며 결정해 나간다.

김신자 목사는 “고 장로 부부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고 장로 부부가 운영하는 팔복떡집은 부부의 기도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기업이다. 한마디로 팔복떡집은 고 장로 부부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라면서, “고 장로 부부는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교회에 나와 3시간씩 기도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린다. 이러니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담임 목사의 말에 순종하며, 교회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고 장로 부부의 신앙생활을 전해 주었다.

   
▲ 소문난 맛집 팔복떡집에서 사람들이 떡을 고르고 있다.

“오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지금까지 담임목사님과 교인들의 중보기도가 있었다. 이 중보기도는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하는 고 장로 부부는 어느 날 교회 부목사의 설교에 감명을 받았다. 그날 설교의 제목은 ‘한 가지라도 똑바로 하라’는 설교였다. 지금까지 한 가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을 회개했다. 그리고 열심히 생명의 떡을 만들어 팔았다. 고 장로 부부는 오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번창한 사업장에 대해 자만하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고 장로 부부가 사업장의 이름을 ‘팔복떡집’이라고 붙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박 권사는 어느 날 8가지의 꿈을 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두 색깔이 변하는 것이었다. 처음 취직한 떡집에서 받은 두 달 치 월급을 가지고 부부는 부산의 어느 기도원을 찾았다. 기도원 원장에게 꿈의 이야기를 했지만, 명쾌한 답을 듣지 못했다.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목사님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8복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풀어 주셨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래서 ‘팔복떡집’이 탄생하게 됐다.

그 이름 그대로 팔복떡집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크게 성장했다. 또한 가정적으로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고, 축복을 받았다. 장애인 아들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현재 장애인 학교에 재학 중에 있다. 큰아들은 울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군복무중이다. 이 얼마나 축복을 받은 가정인가. 하나님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고난과 역경의 삶의 현장에서 깨달았다. 그렇다. 고 장로 부부는 오늘의 곤궁한 세태 속에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이며, 아들’이다.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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