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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자와 중재자 역할 충실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자

기사승인 2019.10.10  0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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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언자적인 전통에 따라 곤궁에 처한 국민 위해 일하는 교회와 정치가 되자(2)

권력과 종교의 충돌

인류의 역사를 보면, 정권과 종교의 충돌은 정권이 권력을 남용 할 때 생겼다. 오늘 보수적인 한국교회와 현 정권과의 충돌은 현 정권의 남용이라고 보기보다는 정치적 ‘관념’에 의한 충돌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과거 보수정권 아래서 한국교회는 정권에 협력하며, 잘 지내 왔다. 국가적 통치권과 한국교회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것처럼, 악어와 악어새가 되어 공존했다. 심지어 피 묻은 손을 위해 기도해 주며, 온갖 혜택을 누렸다.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기득권자로 등장했다. 그렇다보니 한국교회는 악령과 오방에 덧 씌워진 정권을 향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오방과 악령에 덧 씌워진 정권을 옹호하며, 전직 대통령 석방을 요구한다. 심지어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을 신격화하며, 구세주로 여긴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현 정부와 맞서는 데는 보수정권 아래서 쌓은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없어 정권과 충돌하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오방과 악령에 덧씌워진 정권이 국민에 의해 물러났음에도, 인정 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일본 아베의 경제보복으로 곤궁해진 나라를 위해 기도하기는커녕, 일본 아베를 옹호하는 막말을 쏟아 내기에 바쁘다. 어느 교회의 권사는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싸우는 국민들을 아랑곳 하지 않고, 아베에게 ‘사죄합니다’고 막말을 하고,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주최한 집회에서 국민들을 향해 ‘회개’를 촉구하는 웃지 못 할 일을 벌였다.

모 교회의 목사는 보수적인 인사들이 모인 집회에서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온갖 수모와 고난을 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을 향해 돈 벌기 위해 자원한 ‘매춘부’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전 국회의원도 한국기독교단체가 주최한 자리에서 이 목사와 같은 주장을 해 빈축을 샀다. 또 기독교대학이라는 연세대학교 교수가 이와 같은 주장을 해 물의를 빚었다. 누가 보아도 민족의 아픔을 몰각한 처사이다.

제1야당 원내대표는 일본을 향해 우리 일본이라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이들의 입에서 우리 국민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인과 학자, 한국교회의 목회자, 교인들의 이 같은 태도는 기득권자로서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태로 살수 없다는 이기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는데 참담하다. 국민들은 이들에게 희망을 걸지 않는다. 이들에게 예수님의 화해와 사랑, 평화의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성서에서 이탈해 혼자만 살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보수적인 국민과 교인들을 철저하게 이용한다는 것이다. 오늘 SNS를 통해 날아오는 문자메시지는 한마디로 목회자가 교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이 같은 문자 메시지를 날리는 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목회자들의 문자 메시지의 내용은 한마디로 일본 아베의 경제보복과 한반도를 둘러싸고 강대국들의 패권싸움으로 인해 곤궁해진 국민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국민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는 하나님의 종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분명 이들은 신념이라고 말하지만, 이들은 국민을 생각하는 목회자이기 보기보다는 일본과 미국 등 강대국들을 이롭게 하는 매국노에 가깝다. 한국을 향해 경제보복을 단행한 일본 아베에게 있어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최대 우호자이다. 이것은 오늘 막말을 쏟아 내는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 정치인, 학자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것도 국민들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일본관광안가기운동을 비롯해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상황서 말이다.

   
▲ 광화문 집회 광경.

국가의 장이, 곧 종교의 장

과거 한민족은 왜놈이 침략하면, 양반상놈, 남녀노소 막론하고 하나가 되어 왜놈들과 맞섰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일본에게 최대 협력자였다. 선교초기 영미선교사들은 ‘정교분리’를 내세워 한민족의 민족의식 교육과 항일운동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심지어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 출애굽으로 시작되는 구약성서를 보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았다. 이를 지키지 않는 교인이 있으면, 교회에서 추방했다는 사실에 대해 이해 할 수 있는가.

이는 곧 1920년도에 조선공산당 창당과 남산에 신사를 세우는 결과로 이었다. 항일민족운동을 방해받은 기독교 지식인들은 조선공산당에 가입, 항일운동에 가담했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남산에 신사가 세워지는 것을 뻔히 눈으로 보고서도 침묵했다는 것이다. 교회가 일본 신사를 인정하는 꼴이 되었다. 결국 한국교회는 일본 국가주의에 굴복, 신사참배를 결의,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를 서슴지 않았다.

이런 한국교회가 이를 비판하는 세력과 맞서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한국교회는 해방 후 지금까지 친일적인 정부와 함께 해 왔다. 이승만 정권 아래서는 국가권력을 등에 업고 일본 앞잡이들과 양민들을 학살하는데 중심에 있었다. 지난해 제주지역의 교회와 한국대학생선교회는 제주복음화를 위한 앞서, 4.3사태 피해자들과 화해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공권력에 의해 제주 4.3사건과 여순반란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양민들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이들을 ‘빨갱이’, ‘좌파’로 매도해온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정부의 이 같은 사과에 곱게 평가 할리 없다. 이 정부가 빨갱이 정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치인들 중에 한국교회의 이같은 왜곡에 함께 춤을 추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오히려 일부정치인은 자신들의 진영싸움에 교회를 철저하게 이용해 왔고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영싸움은 명분도, 실리도 없다는 것이다.

화해자로서 일하는 교회되자

한국교회는 세대간, 계층 간, 이념 간, 노사 간에 갈등이 심각한데, 중간자, 호해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계층 간, 이념 간, 노사 간 갈등을 부추겨 진영싸움의 중심에 있다. 지난 3일 한국교회는 법무장관 ‘조국 퇴진’,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외치며, 광화문에서 정치인들과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는 교회가 국민적 갈등, 진영싸움으로 몰고 간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여기에는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단체와 교단이 참여했다. 이들은 과거 예언자 전통에 따라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일한 목회자와 교회를 향해 ‘빨갱이’, ‘좌파’로 매도했던 목회자들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이들은 항상 정교분리를 내세워 세상권력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며, 군사독재정권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혜택을 누렸던 인사들이다. 좌우 진영싸움을 벌이고 있는 국민의 중심에서 중간자, 화해자로서의 역할을 감당 할 수 없는 것이가(?) 대부분의 국민들은 묻고 있다.

그렇다고 현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50%이상의 국민이 반대하는 조국 법무장관 입명에 반대하고 있는데, 왜 무리하게 법무장관으로 임명해 국민적 갈등을 조장하느냐는 것이다. 왜 국민들은 구름떼 같이 광화문에 몰려와 조국 법무장관 사퇴를 외쳤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다 법무장관 수호 맞불집회가 계속해서 강행한다면, 이 나라는 혼란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 할 것이다.

이럴 때 교회는 중간자, 화해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분열과 갈등의 한 복판에서 용광로가 되라는 것이다. 성서는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분열과 갈등을 획책하지 말고, 화해자로서 예언자의 사명에 충실하라고 성서는 교육하고 있다. 그런데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남북한 분단의 중심서, 진영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여야 정치판의 중심서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교회는 분단의 현장서 화해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노래해야 할 목회자와 교인들은, 남북한 간에 적대적인 관계를 조성하며, ‘로마평화’(팍스)를 찬양해 왔고, 찬양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깨달아야 한다. 보수적인 사람들의 하나님은 진보적인 사람들의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남북한 민족 모두의 하나님이다. 하나님나라는 혼자 갈 수 없다. 보수도, 진보도, 남북한민족 모두가 함께 가야 한다. 이들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열과 갈등의 중심서 화해자가 되라는 것이다.

교회는 분열과 분단의 한복판에 서자

이제는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삶의 현장, 역사의 현장인 분열과 갈등, 분단의 한복판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곳에서 예수님이 벌인 참 평화, 화해를 통한 새로운 나라를 갈망해야 한다. 한마디로 그의 의와 그의 나라를 간망해야 한다. 오늘 우리사회는 보수와 진보로 갈려 한쪽은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또 한쪽은 광화문에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고, 국민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상황서 이제 교회는 국론 분열이 대한민국을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일본의 경제보복과 세계경제의 불황, 새로운 기득권자들로 인해 곤궁해진 국민들을 위해서 일하는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과거 한국교회는 나라와 민족에게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교회가 나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는가. 민족 구원에 교회가 나섰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하지 않을 까(?)

국가권력은 국민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경청한다. 특히 국가권력을 향한 교회의 쓴 소리는 그리스도의 본질에 충실 하는 것이다. 끝없이 지난 일을 탓하고 정죄하는 것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나와 다르다고 정죄하기보다 조화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복음 안에서 하나 됨으로 교회의 제사장적 사명을 회복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침묵하는 동안 세속의 권력이 공교회에 침투하고, 동성애와 젠더주의가 활개를 치고 있다.

한국교회는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통회 자복함으로 먼저 한국교회의 공교회성과 거룩성을 회복하고,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을 것을 촉구해야 한다. 한국교회 교인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싸움에 임하는 십자가 정병답게 기도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위기를 만났을 때 미스바에 모여 기도하면서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간 것 같이 우리도 함께 기도하는 운동에 참여하되, 그 마음에 나라 사랑의 동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자. 여야, 보수, 진보, 종교와 이념을 초월해 나라를 지키고 안보 경제 위기를 극복하자. 특히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화해자로서, 평화주의자로서, 중재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구하자. 이것이 일본 아베의 경제보복과 국민적 갈등,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로 곤궁해진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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