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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목사] 지금은 우리나라를 생각할 때 ①

기사승인 2019.10.09  12: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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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 인 찬 목사

우리 한국인의 의식의 저변에는 정치는 매우 더럽거나 추한 것이고, 정치에서 멀어질수록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만 사고하면 우리의 삶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는 결국 누가 책임져야 할까.

한국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정치 참여에 매우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특별히 복음주의의 교회의 전통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이런 정치참여 소홀의 원인 중에 하나는 종교 개혁가들의 소위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전통에 대한 오해가 그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여긴다.

정교분리라는 단어 자체가 잘못 번역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영어번역에서 본래대로 번역하면 그것은 정교분리가 아니라 교회와 국가의 분리(國,敎 分離)이다. 원래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이지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아니다.

교회와 국가사이의 기능적인 분리는 절대 필요하다.

과거 인류역사에 종교(교회)가 국가를 지배하여 종교가 국가를 다스리며 종교가 국가의 왕을 임명하던 어두운 세대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유럽의 중세를 꼽을 있을 것이다. 또 거꾸로 국가가 교회의 지도자들을 임명하고, 교회를 사사건건 간섭하는 역사의 암흑도 있어왔다,

오늘의 북한 교회나 혹은 전제주의, 사회주의, 국수주의 국가에서 대체로 이런 형태의 경향이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정치와 종교는 분리 될 수 없지만 교회와 국가의 기능적 분리는 기술적으로 매우 필요한 것이라 여긴다. 따라서 왜곡 변질된 정교 분리의 주장이 그리스도인들이 정치를 외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 나라의 국민은 그 나라 정치를 결코 외면할 수도 없고, 요즘은 주변국의 정치까지도 관심을 가져야 지경이다. 최근에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정치의 격변에 마주서 있다. 지금은 분명 나라를 깊이 생각하고 번민할 때이다.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서 같은 목회서신을 통해 목회자에게 기도를 매우 강조한다. 기도 중에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의 중요성을 더 강력하게 가르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결코 정치나 나라의 역사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다는 교훈이다. 바울은 범 세계주의자(cosmopolitan)였다. 세계를 가슴에 품고, 세계를 여행하며, 세계 선교에 생을 드린 사람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든지 자기의 민족 유대인의 회당을 먼저 찾았고, 거기서부터 복음전하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 민족들에게도 그들이 그들의 나라와 백성을 위해 기도해야 할 중요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오늘 우리는 이념 간, 지역 간, 계층 간의 극단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이 시점에 우리나라를 생각하고, 깊이 기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 우리 그리스도인은 나라를 생각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나라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인가.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나라를 생각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딤전 2:1-2)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이유는 우리가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함이다. 여기 ‘고요하다, 평안하다.’는 모두 형용사다. 그리고 이 ‘고요하다. 평안하다.’는 표현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행복의 일반적 삶의 정황을 대표하는 것이다.

‘고요하다.’는 소요스러움이 없는 외적인 삶의 정황을 나타내는 표현이고, ‘평안하다.’는 불안이 없는 내적인 삶의 정황을 묘사한다. 안으로 불안하지 않고, 밖으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삶의 정황, 우리는 모두 이런 삶을 영위하기 원한다.

바울은 더 중요한 이유를 제시한다. “이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한다.”에 앞서 강조하는 두개의 단어가 있다. 우리가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한 “경건과 단정”함이다. 경건과 단정, 이 두 단어는 매우 유사하면서도 강조점에 차이가 있다.

우선 “경건”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쓰이는 단어이다. 하나님을 향한 삶의 태도,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을 닮아가려는 삶의 덕목을 강조할 때 ‘경건’이 쓰인다. 영어 Godliness는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닮아 가는 인격을 우리 성경은 경건이라고 했다.

<다음호에 계속> 의왕중앙교회 담임

황인찬 목사 webmaster@cknews.co.kr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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