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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주 교수] 요셉의 유골 (출 13:19)

기사승인 2019.10.09  12: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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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창 주 교수

몇 년 전에 미국의 공영방송(NPR)이 ‘오늘의 퀴즈’에서 한국에 관한 질문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국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특별히 하는 일이 무엇일까?’ 아리송한 질문이지만 잠시 생각해보면 금세 풀 수 있는 문제다. 그것은 ‘조상묘의 이장’이다. 선조들의 묘소가 후손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다는 동양 사람들의 풍수지리가 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선거를 앞두고 조상의 묘소를 이전하는 해프닝을 두고 조크삼아 소개한 것이다. 여기에는 조상의 묘를 입신양명의 근거로 삼는 비과학적인 현상을 두고 비아냥거리는 조롱과 냉소가 내포되었다.

성서는 모세의 무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정확하지 않고 얼버무리는 데 비해(신 34:6) 요셉의 무덤과 유골에 대한 기록은 꽤나 선명하다(창 50:25; 수 24:32). 모세는 이집트 땅에서 탈출하기 전에 ‘요셉의 유골’을 챙기라는 유언대로 행한다(출 13:19). 요셉은 이집트에서 살며 증손까지 두었고 130세에 죽었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유골을 이집트에 두지 말고 떠날 때 반드시 취할 것을 부탁한다(창 50:25). 여기서 해명할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요셉의 유골을 이집트에 두지 말라는 유언에 대한 당부이다. 한글번역은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개정), ‘엄숙히 맹세까지 하게 하며’(새번역), ‘단단히 다짐해 두었다’(공동) 등으로 옮긴다. 본문의 ‘부정사 + 미완료 동사’ 구문은 내용과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연속적이며 점층적인 묘사 방식이다.<Miqraot, 100> 히브리어 강조 표현에 자주 등장하는 수사법이다(창 2:17; 레 10:16). 따라서 ‘취하라’는 요구는 단순한 요구를 넘어 끝까지 수행해야할 책임까지 요청한다고 봐야 한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 이름이다. 출애굽기 13장에서 신명은 엘로힘과 야웨가 번갈아 나온다. 모세에게 말씀하시고(1절),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시며(8절),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분(11절),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분은 야웨로,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세우시고(18절), 요셉의 유골과 관련된 하나님(19절)은 엘로힘으로 나타난다. 카수토의 지적처럼 엘로힘과 야웨가 한 문단에서 이처럼 따로따로 언급된 것은 (창세기) 요셉의 하나님과 (출애굽기)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인도해내신 야웨가 동일한 분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Cassuto, 157> 곧 야웨는 고대 선조들의 하나님이며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내신 분이라는 ‘야웨 하나님’ 신앙을 되새긴다(왕상 18:39).

이와 함께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에 요셉의 유골을 취했다는 보도는 구원사의 틀에서 설명할 수 있다. 즉 야곱과 그의 후손들이 이집트에 머문 것은 가나안 땅의 가뭄으로 인한 잠정적이며 일시적인 체류였을 뿐이다. 장차 그들이 가야할 공간은 약속의 땅 가나안이었다(창 12:1; 50:24). 요셉은 그곳에 잠시 머물 수 있게 했던 인물이지만 디아스포라 이집트에 언제까지 묻어둘 수 없다.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함께 그의 유골도 가나안을 향하여 떠나게 된다. 임시 거처가 아니라 영원한 안식처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듯 모세는 요셉의 유골을 취하여 기나긴 광야 여정을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모세는 가나안에 이르기 전에 죽고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마침내 요셉의 유골을 세겜에 안장한다(수 24:32). 그곳은 야곱이 세겜의 아버지 하몰로부터 매입한 땅이었다(창 33:19). 요셉의 유골을 세겜에 매장함으로써 이방인의 땅이 아닌 가나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되었다. 히브리서는 요셉이 믿음으로 이스라엘 자손의 출애굽을 확신하고 자신의 유골을 가져가도록 부탁한 것이라고 증언한다(히 11:22).

요셉의 유골에 관련한 기사는 긴박한 출애굽 일정과 경로로 볼 때 다소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이 온통 탈출에 신경을 쏟는 사이에도 요셉의 유골을 챙기라는 유언을 실천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요셉의 죽기 전에 이미 예견한 대로 하나님의 도움과 약속에 대한 기대가 성취되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이집트에서 떠돌이와 노예살이를 종결하고 본향을 향한 힘찬 발걸음이 시작되고 있음을 함축한다.

한신대 구약학

김창주 교수 webmaster@cknews.co.kr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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