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존 볼턴 미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일본을 거쳐 지난 7월 23일 1박 2일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그가 입국한 다음날 가장 먼저 한 일은 나경원 원내대표와 비공개 회동한 것이다. 나경원 의원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지만, 문재인 정부 발목잡기로 연일 대립중인 제1야당 원내대표와 가장 먼저 회동했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문재인 정부를 우습게 여기는 게 아니라면 중요한 외교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으로서 결코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볼턴의 행보는 일본의 하급 관리들이 제 멋대로 왕궁에 드나들며 감히 임금더러 이래라 저래라 했던 구한말의 역겨움과 뭐가 다를까.

아닌 게 아니라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오전 8시께 미국 대사관저에서 볼턴을 만났다”며, 볼턴으로부터 무슨 암시를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문재인 정부 공격에 열을 올렸다. “북·중·러 공조가 긴밀해지고 있는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라는 위험천만한 카드부터 꺼내는 물불 안 가리는 돌격대장식 외교가 우리 안보에 틈을 내보인 것이나 다름없다.” “동맹과 우방을 업신여기는 이 정권이 자초한 위기로서 한 마디로 얼빠진 정권의 얼빠진 안보정책이 빚어낸 비극적 현실…주변 열강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구한말 조선의 처절한 모습, 국제정세에 어둡고 발전을 게을리 한 무능한 왕조가 망국을 막지 못한 처참한 과거가 떠오른다.”고 했다. 제법 그럴싸하지만 팩트는 그 반대이다. 한국을 적대국으로 도발한 것은 일본이다. 동네 불량배로부터 폭행당한 자식을 향해 ‘처신을 어떻게 했기에…, 못난×’이라고 구박하는 자가 과연 어미일까.

나경원 의원으로서는 한반도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행사하는 인물이 그 누구보다 자기를 먼저 만나줬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하지만 정말 나라의 품위를 생각한다면 설사 볼턴이 먼저 만나자고 해도 사양했어야 한다. 볼턴과 나경원이 무슨 밀담을 나눴는지는 알 바 아니다. 하지만 한국경제를 초토화시키려는 일본의 공격, 그 사이를 더 벌리려는 중국과 러시아 전투기의 영공침범, 북한의 도발, 불난 집에 와서 방위비 더 내라고 겁박하고,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압박하는 미국 등 사면초가인 이때 야당 대표까지 나서서 적과 싸우는 정부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평소 정적과 피투성이로 싸울지라도 외적의 공격에는 초당적으로 힘을 합해 싸워야 마땅하다. 적과 싸우는 장수 등에다 총질이나 하는 사람이라면 한줌 권력에 눈먼 사람이지, 대한민국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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